출옥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조선일보 지국장을 지내면서 은밀히 항일운동을 계속했으며, 1927년 6월에는 김상기(金相起)·남병태(南炳台)·박창호(朴昌鎬)·장대발(張大發) 등과 함께 예천군 내 청년대회를 개최하고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의하는 등 구국운동을 했다.
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, 국가보훈부는 이 비를 2003년 2월 현충시설로 지정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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